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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시작되면 잠시 본다는게, 시간가는줄 모르고, 집중하게 하는 프로그래들이 있습니다. 꼬꼬무, 심야괴담회,  당혹사, 알쓸범잡 입니다. 스토리 텔링에 청중들도 함께 고민하게 되면서 몰입시키는 방송들인것 같습니다. 옆에 아기가 울든 와이프가 갈구든,,, 정신줄 놓고 보게 만드는 몰입도가 있는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꼬꼬무, 당혹사, 심야괴담회는 지상파에서 쉽게 볼수 있어서 인지, 자주보게 되는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오피스텔 추락사건 보면서정말 섬뜪하고, 개구리소년 실종사건도 정말 옛날 이야기인데,  지금에서야 다시 의구심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몰입도가 있엇던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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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인터넷에서 발췌한 비교 분석 리뷰가 있습니다만, 편하게 잘 분석해주신거 같습니다. 참고하시면 본인한테 맞는 프로그램부터 맞춰서 보실수 있을듯 합니다. 참고하셔용~

 

 

우리는 ‘썰’을 좋아한다. 물론 이내도.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면 “너 전에 말한 그 애 썰 좀 풀어봐”라고 말하곤 한다. 그만큼 우리는 이야기에 평소에도 미쳐있던 셈. 그런데 그중에서도 사람들을 잘 만나지 못하니까 더 ‘말하는’ 이야기에 목마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요즘 나는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알쓸범잡(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 당혹사(당신이 혹하는 사이), 심야 괴담회 같은 프로들을 본다. 종영한 프로도 많지만 꼬꼬무도 시즌2로 돌아온 거 보면 또다시 돌아오려고 잠시 숨 고르는 게 아닐까? 아무튼 오늘은 이 네 가지 프로들 중에서도 어느 걸 볼까 고심하는 분들을 위해 각 프로들을 정리해볼 참이다.

 

#4(꼬꼬무, 당혹사, 알쓸범잡, 심야괴담회) 프로그램의 공통점

일단 토크쇼마냥 패널들이 나와서 토크로서 프로그램을 이끌어 간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러나 토크쇼와 다르게 패널들이 바뀌지 않고, 고정 패널들에서 가끔 게스트가 나오는 정도이다.  자기 얘기를 하던 토크쇼와 달리 원래 있던 역사적 사실, 이야기들이나 주제를 가지고 여러 지식들을 이야기하거나 들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식을 띠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마치 어제 드라마를 본 친구가 한화를 요약해서 내게 전달해주는 기분이 들기도 흥미진진한 옆자리 토크를 엿듣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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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꼬꼬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꼬꼬무는 벌써 시즌 3입니다. 시즌 1, 시즌2 반응이 좋았고 지금도 순항 중이다. 일단 기본 형식은 이야기꾼 장도연, 장항준, 장성규가 이야기 친구를 불러 이야기 친구에게 어떤 결정적인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관련 영상 자료나 여러 반응들을 함께 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은 예능으로 분류되지 않고 ‘시사교양’으로 분류되는 만큼 사실과 시사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들을 전달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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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꼬꼬무를 정말 좋아하는 편인데 진짜 사실을 다루고 있다 보니 최근에 심적으로 부담이 있어서 무거운 이야기들을 피하고 있던 나는 꼬꼬무를 멀리하고 있지만 4개의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몰입감이 강한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피하고 있었어도 시즌 1을 거의 다 보고 2도 조금은 봤기 때문에 추천할 수 있는 화는 시즌 11회 암호명 마카로니 그리고 거짓말, 6화 지상 최대의 인간 증발 휴거 편, 9회 암호명 KT 그리고 흑색공작원, 시즌 2 3회 우리들은 ‘내일의 조’ : 사상초유 더블 하이재킹로 이동과 1045년 만의 귀가 : 죽은 자의 생존 신고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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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를 보면서 우리가 평소에 “**도 몰라? 간첩이냐?” 같은 유머나 ‘사이비 종교’나 ‘정치적 행동’에 대해서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왜 더 위 세대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알게 되어서 가장 유익한 프로그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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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심야 괴담회

괴담’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이야기를 받아서 전달해 주는 스타일인데, 고정 패널로는 김구라, 김숙, 허안나, 곽재식, 심용환, 황제성이 나오고 있다. 이야기 중에서도 괴담만 읽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마니아들을 노리고 나온 프로그램인데 생각보다 많고 또 몇 개 보다 보니 이게 은근한 재미가 있다는 걸 최근에 깨닫게 되었다.

 

사실 나는 괴담, 공포 관련 모든 영화, 이야기 다 못 듣고 못 보는 사람이다. 그냥 듣고 보는 건 그래도 견딜 만 한데 보고 난 후 집에 와서 혼자 있을 때나 밤에 잠을 자려고 할 때 그 후유증들에 쉽사리 건들지 못하는데 심야 괴담회는 괴담이 은근 재밌다는 걸 깨닫고 낮에 한두 개쯤 읽어볼 때 이 프로그램과 만나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 나는 파일럿 화와 1화밖에 못 봤다. 나중에 또 용기를 내서 볼 생각이다)

 

그래서 사실 이 프로에 대해 마니아이며 이 프로에서 이런 괴담을 좋아하는 시청자를 부르는 말인 ‘어둑시니’인 친구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 고정 패널들 중에서 특히 김숙과 허안나가 잘 읽는다고 알려줬는데 나도 동감했다. 특히 김숙 같은 경우 표정까지 가끔 희번뜩하여 더 소름 돋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회차 추천도 나는 할 수가 없어서 물어봤는데 친구의 추천으론 12회 파란 얼굴, 6회 내 눈이 어때서, 같은 화의 뒷짐지고 자는 친구, 5회 꼬까신, 그리고 18회 가 소름 돋는다고 추천해 줬다. 나는 또 친구를 붙잡고 낮에 드립 쳐가면서 봐야겠다. 정말 이 여름에 가장 맞는 이야기 방송이었다. 소름 돋으니 이만 보내줘야겠다. 잠시 정보 보겠다고 썸네일을 많이 봤는데 그것만으로도 무서워서 오늘이 힘들 것 같다.

 

4개 프로가 각자 특징이 있어서 취향 따라 골라서 보기 좋고 비슷한 프로그램들도 몇 개 더 있어서 이걸 보면서 혹시 다른 것도 있나 검색해봐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작은 팁은 친구 한 명, 음료 하나, 가벼운 과자 정도 있으면 이 프로그램들을 보기가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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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당혹사 (당신이 혹하는 사이)

제목만 보고서 도대체 뭐야?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프로그램 한 회를 보고 바로 이해가 됐다. 정말 ‘혹’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프로였다. 간단히 설명하면 당혹사는 모든 음모론들에 대해 말하는 프로그램이다. 정확한 사실 하나에 왜 이렇게 됐을까? 왜 이런 현상이 있을까? 하는 이유나 아니면 사건의 자세한 정보가 알려지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 다양한 가능성을 가지고 가설을 세운다고 생각하면 쉽다.

 

고정 패널로는 송은이, 변영주, 봉태규, 유빈, 권일용(국내 1호 프로파일러)이 나와서 이야기를 한다. 이 프로그램은 파일럿으로 잘 되어서 고정이 되었는데 파일럿 화까지 합쳐도 7화밖에 안되는 짧은 화로 종영된 프로그램이다. 개인적으로 4개 중에 이걸 가장 좋아했기 때문에 너무 아쉽지만 아무래도 음모론의 특성상 밝혀지지 않은 사건들이 밝혀진 사건들보다 많지 않고 정보도 적어서가 아닐까 싶다.

 

프로그램의 본 컨셉은 집주인 윤종신이 음모론으로 영화 기획 회의를 한다는 내용이다. 이 당혹사에서 추천하고 싶은 화는 파일럿 때의 1(코로나/빌게이츠 관련 음모론), 본 프로가 되었을 때의 2(북한 로열 패밀리/우주인 관련 음모론), 3(대학로 해골/ 존스타운 관련 음모론)이다. 나는 음모론을 좋아하긴 하지만 찾아보는 편은 아니었는데 당혹사를 보면서 일루미나티가 정확히 뭔지, 왜 빌게이츠에게 음모론이 많은지 등을 정확히 알 수 있어서 진짜 흥미로웠다. 미국이 정말 많은 실험을 했구나 왜 거기에 음모론이 많은 지도 알겠다 하고 이해했다. 그리고 패널들이 말하는 가설들을 들으면서 프로그램명이 충실히 이행되어 “와 진짜 혹한다” 하는 말을 많이 하게 된 프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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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알쓸범잡(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

알쓸범잡은 4개 중 가장 토크쇼 같은 방송이다. 이야기보단 지식 전달, 생각 공유에 더 치중되어 있는 방송이고, 고정 패널론 윤종신, 장항준, 김상욱(과학 박사, 카이스트 물리학), 정재민(법무부 법무심의관 전 판사), 박지선(프로파일러)이 나와 우리나라 지역을 방문하면서 지역 중에 가고 싶은 곳을 각자 방문하고 정해진 주제의 범죄에 대해서 얘기하는 스타일이다.

 

범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다양한 사건들이 나오고 지식들도 나오고 앞선 프로그램보다 좀 더 편안하면서도 끔찍하기도 하다. 굉장히 다른 이야기지만 생각보다 현실의 법치나 일들이 안심이 되는 이야기들도 있고 또 범죄들의 끔찍함과 그걸 행할 수 있는 심리나 피해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기도 한다. 그래서 법적인 지식을 획득하기도 좋고 심리에 대해서나 진짜 나의 다른 친구들을 만나서도 같이 얘기하기 좋은 소재들과 이야기들을 많이 획득하는 것 같다.

 

알쓸범잡에서 추천하고 싶은 화는 1(부산), 6(인천), 12(경기 남부)이다. 범죄들 중에서도 아 이 사건이 여기구나 하는 것도 흥미로웠고 사람이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그 욕구가 범죄의 기초가 된다는 생각도 알 수 있었고 누명에 대한 이야기, 실제 범죄자와 판결문 등 정말 곁에 있는 이야기들이라서 현실성이 가장 와닿았다.

 

또 이 프로그램의 또 하나의 특징은 같은 이야기의 다른 관점들이다. 물리학을 하는 박사님, 전 판사이면서 현재 법무심의관, 영화감독, 범죄심리학자 들의 각자 다른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정말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다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 나는 모르는 물리적 관점? 이 이해가 되는 시점도 있어서 정말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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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시즌3 도끼만행 64인 결사대

 

- 사건 배경

1976818일 판문점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북한 무력도발이 충돌한 끝에 남북한이 전쟁 터지기 직전까지 이르렀던 사건입니다. 주한 UN 장교를 살해한 심각한 사건이었습니다. 중국과 소련도 북한을 두둔하지 않았습니다. 데프콘 3단계로 격상되어 전시 직전의 일촉즉발 상황까지 갔었습니다.

꼬꼬무 시즌3 도끼만행 64인 결사대

 

당시 판문점은 공동경비구역이었습니다. UN3초소(CP 3)는 조선인민군 육군 초소 3개소(KPA 4, KPA 5, KPA 8)에 포위당한 지점에서 위협에 노출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지대에 위치한 5초소(OP 5) 측에서 3초소를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고 합니다. 문제가 된 지점인 미루나무가 5초소의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UN군 경비대 작업반은 3초소의 안전 도모를 위해 미루나무를 자를 것을 권고했다고 합니다.

 

꼬꼬무 시즌3 도끼만행 64인 결사대



86, 한국군 노무자 4명과 UN4명이 미루나무 절단을 시도했는데, 북한군이 이의제기를 하면서 작업을 중단시켰습니다. 그러자 경비대는 818일 절단이 아닌 가지치기만 하기로 결정, 오전 1030분 노무자 3, 육군장교 3, 경비병 7명을 동원하여 가지치기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꼬꼬무 시즌3 도끼만행 64인 결사대



그런데
1050분 경, 갑자기 북한 육군의 박철 중위가 병력을 이끌고 현장에 나타나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갑니다. 박철 중위는 느닷없이 경비 중대장 아서 보니파스(Arthur G. Bonifas) 미 육군 보병대위에게 작업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보니파스 대위는 이를 무시하고는 작업을 속행하도록 지시했고, 1130분에는 북한군 경비병의 숫자가 30명으로 증강합니다. 박철 중위는 "그만두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2차 위협을 가했으나 보니파스 대위는 재차 무시합니다.

 

 

꼬꼬무 시즌3 도끼만행 64인 결사대



그러자 박철 중위가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내자 북한 육군 경비병들은 일제히 소매를 걷었고, 박철 중위는 즉각 "죽여!" 라고 소리 지르며 보니파스 대위를 걷어차며 구타했습니다.

다른 북한군들은 주먹과 곤봉을 이용해 UN군 장병들을 상대로 마구잡이식 폭행을 가했으며, 북한군 병사가 버려진 도끼로 보니파스 대위의 머리를 찍어서 살해합니다. 여러 병사들이 부상을 입었으며, 보니파스 대위뿐만 아니라 소대장 마크 배럿(Mark T. Barret) 미 육군 보병중위 역시 참혹하게 살해당했습니다.

 

꼬꼬무 시즌3 도끼만행 64인 결사대

 

- 사건 경과

사병을 잃은 것에 제일 분노할 상대가 미국이었습니다. 장교 2명을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참혹하게 잃은 미군은 대격노했습니다. 당시 UN군 사령관 미 육군대장 리처드 스틸웰 장군은 즉시 회의를 소집한 뒤,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데프콘3를 발동시킵니다.

미국
정부도 강경하게 대처하기로 했습니다. 미국 정계는 당파를 불문하고 공산주의자들에게 미국의 위신이 깎여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인식이 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이전까지 전쟁에서 절대 패하지 않는다는 미군의 자존심이 바닥을 기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비판을 불식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포드 대통령은 즉각 북한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북한이 미국인 2명을 때려죽인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할 것이라고 소리쳤고 회의장을 나오면서 빨갱이들의 피를 반드시 보고야 말겠다고 말하는 등 미국의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

그렇지만 판문점에서 일어난 사건만으로는 전면전을 일으킬 수는 없었고 특히 중국과 소련을 자극할 우려도 있어 스틸웰 장군은 우선 사건의 원인이 된 미루나무를 자르고, 북한측이 추가 도발을 가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결국 대안이 승인되고 데프콘 등급이 상향되었습니다.

-사건 수습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를 통해 육군 특전여단 대원들로 이루어진 64명의 결사대를 조직했습니다. 결사대가 해당 작전 지역에 투입되어 미루나무를 절단하는 미 육군 공병들을 엄호하고, 육군 수색대는 그 일대에 매복하여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보복작전이 수행됐습니다.

 

꼬꼬무 시즌3 도끼만행 64인 결사대

 

북한이 혼자 사고치고 난리를 치든 미국은 나무가 벌목되는 동안 북한이 총알 한발이라도 도발을 가하면 대대적인 반격을 가할 생각이었기에 북한이 침묵하자 결국 미루나무를 자르는 선에서 작전을 종결짓고 사태는 마무리 되었습니다.

판문점 경비초소에는 사건 이전과 같은 애매한 경계 대신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확실한 경계가 세워졌습니다. 경계 밖에 있던 양측 초소는 모두 철거되고 현재와 같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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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 입니다. 1960년대 평화시장 봉제공장 재단사로 일하며 노동자 권리를 위해 노력하십니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알리고자 정부와 기업들에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며 22세의 나이로 근로기준법 법전과 함께 분실자살합니다.

 

꼬꼬무 시즌3 피로 쓴 약속 전태일 열사



대한민국 노동운동은 전태일 열사 이전과 이후로 구분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노동운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고 합니다. 전태일 열사 분신 사건 이후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고, 지식인, 대학생, 노동자 계층 전체가 그의 죽음을 계기로 각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꼬꼬무 시즌3 피로 쓴 약속 전태일 열사

 

 

1948928일 대구 남산동에서 22중 장남으로 태어나십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매우 고운 심성과 다정다감한 성격, 불의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는 기질의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재단사였던 그의 집안은 어렸을 때부터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합니다. 부산으로 이사갔다가 서울로 이사온 후 아버지가 봉제 공장을 차려 먹고살 수준의 생활을 영위한 적도 있지만, 사기를 당하는 통에 온 가족이 다시 가난의 구렁텅이로 빠졌다고 합니다.

 

 

꼬꼬무 시즌3 피로 쓴 약속 전태일 열사

 

17세 무렵 무일푼의 몸으로 상경해 청계천 평화시장 피복점에 이른바 '시다'라고 불리는 재단 보조로 취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재단사로 일하던 중 재단 보조 여공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박봉, 질병으로 시달리는 모습을 보며 그러한 노동 현실의 타파와 개선을 위한 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근로기준법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그 내용을 독학하려 하였으나 근로기준법 전문이 국한문 혼용인지라 내용을 알 수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전태일 평전을 통해 알려진 그의 이러한 생각은 당시의 대학생들에게 현실 참여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해설서를 구입하여 밤낮을 안 가리며 읽었는데 말이 해설서지 법률 용어 투성이였기에 초등학교 중퇴의 전태일에게는 악전고투였다고 합니다. 근로기준법상의 내용과 현실의 괴리를 절감한 그는 19696월 평화시장 최초의 노동 운동 조직인 '바보회'창립하여 현재 근로 조건의 부당성을 알리고자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봉제 공장주들에게 밉보인 전태일은 직장에서 해고된 후 평화시장에서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한동안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1970년 재단사로 취직이 되어 다시 평화시장으로 돌아온 전태일은 이전 바보회 활동을 같이 하던 친구들을 규합하여 '삼동친목회'를 조직해 한층 적극적인 활동을 펼칩니다. 청계천 피복 공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노동 실태 설문조사 결과를 노동청에 제출한 것이 경향신문에 실리며 주목을 받은 후 사업주들과 협의를 벌이기도 했으나 현실의 장벽에 막히는 바람에 무위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후로 정재계는 그들의 활동에 사회주의  조직'이라는 빨간 딱지를 붙이고 노동자들이 이러한 움직임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조직적으로 방해했다고 합니다..

19701113일 청계천 앞에서 노동자들의 집회 중 구호를 적은 플래카드가 경찰과 고용주 측에서 동원한 패거리들에 의해 찢겨지고 짓밟히자 전태일은 정확히는 평화시장에서 남쪽에 자리한 동화시장 계단에서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사전에 자신의 친구 김개남에게 자신의 몸에 성냥을 그어 달라고 말했던 것에 따라, 익명의 친구는 뒤에서 불을 붙여, 이 사회에서 형식에 불과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선언하고 자신도 불에 함께 타들어가 생을 마감하십니다.

전태일은 그의 손에 들린 법전과 자신을 태우면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꼬꼬무 시즌3 피로 쓴 약속 전태일 열사



이후 국립의료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이미 엉덩이를 제외한 전신에 3도 중화상을 입은 상태인데다 병원 측에서도 환자가 돈이 없다는 이유로 기본적인 응급 치료 이외에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명동성모병원으로 옮겨졌고 어머니 이소선 여사에게 "어머니, 내가 못 다 이룬 일 어머니가 이뤄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19701113일 밤 10시에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꼬꼬무 시즌3 피로 쓴 약속 전태일 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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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시즌3에서.. 충격적인 사고가 방영합니다.. 저도 중고등학생 때였던거.. 같은데, 1999년 사건입니다. 지금에서 되돌아보면.. 정말 충격적이네요. 저도 어느덧 부모가 되었는데두렵고, 절대 다시는 있어서 안되는 사건인듯합니다..

씨랜드 참사 화재는 약 20년 전 1999630, 새벽 030분경, 경기도 화성군의 '씨랜드 청소년수련의 집'이라는 청소년 수련원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 참사입니다.

 

꼬꼬무 시즌3 씨랜드 참사 씨랜드 화재



화재사건 당시 씨랜드에는 서울 유치원생 42, 군포 유치원생 65, 서울 미술학원생 132, 부천 유치원생 99, 영어학원생 74, 화성 초등학교 학생 42명 등 497명의 어린이와 인솔교사 47 등 모두 544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참사로 유치원생 19, 인솔교사 1, 레크레이션 강사 3명까지 총 23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였다고 합니다.

 

 

꼬꼬무 시즌3 씨랜드 참사 씨랜드 화재

 

- 원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화재의 원인이 모기향 불이었다고 발표합니다. 모기향이 쓰러지며, 가연성 소재로 된 건물 내로 불길이 번지고 매캐한 독가스를 뿜어지면서 피해가 커졌다고는 합니다. 법원 판결에서도 모기향이 화재의 원인으로 판단되었습니다.

 

꼬꼬무 시즌3 씨랜드 참사 씨랜드 화재



하지만 유가족들은 76일 한국화재보험협회 실험에서 모기향을 피운 채 이불과 신문지를 놓고 2시간 동안 바람을 불어넣었지만, 불이 붙지 않았다고 합니다. 79MBC <PD수첩>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목격 증언으로 보아 전기 누전을 원인으로 보는게 사실에 가까울 거라는 의견들이 제시됩니다.

씁쓸하게도 원인에 따라 책임소재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는데, 모기향은 소망유치원장의 책임, 전기누전은 공무원의 책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화재진압

희생자가 많았던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은 사고지역이 무선통신 난청지역이라 신고가 늦었다고 합니다. 1999당시는 핸드폰 보급 초기로 통화가 안 터지는 음영지역이 많았다고 합니다.

 

꼬꼬무 시즌3 씨랜드 참사 씨랜드 화재



오산소방서에 신고가 접수된 건 사고 1시간 후였고 게다가 소방서에서 씨랜드까지의 거리는 70㎞돼서 최소 40분은 걸렸다고 합니다.. 도로상태도 좋지 않아.. 출동에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 대참사이유

특히, 어린이들이 희생된 주요 이유로 인솔교사들이 무책임하게 대응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해당 유치원의 인솔교사들은 그 유치원생들이 자는 반대편 방에서 투숙 중이었다는 것이며 최초 발화지점도 아이들이 자는 방이었다고 합니다. 누전 또는 합선사고로 추측되는데, 아무런 빛도 없는 깜깜한 방안에서 어린이들은 불길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교사가
같이 자고 있던 방 아이들은 무사히 나올 수 있었겠지만, 인솔 교사의 대부분은 밖에서 불을 피워두고 삼겹살과 소주를 먹고 있었던 터라 불이 났어도 술에 취해 대부분의 교사들이 제대로 대응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수련원 측은 운영 과정에서 시공 및 감리회사 관계자들에게 뇌물을 먹였으며 화성군 공무원들은 이를 묵인, 비호하였고, 충격적이게도 화성군수가 불법 운영에 개입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청소년
수련활동이란 건 초중고생 대상이라 유치원생은 제외하는 게 원칙인데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소망유치원은 참사 전날 서울강동교육청이 개최한 '여름방학 생활지도를 위한 원장회의'에서 유아 숙박수련활동 금지를 시달받았는데도 합숙을 강행했다고 합니다.

 

 

꼬꼬무 시즌3 씨랜드 참사 씨랜드 화재

 

- 수사 및 처벌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씨랜드-화성군청 간 온갖 비리 사실이 있었음을 밝혀냈고 이에 전국적으로 여론이 폭발했다고 합니다. 해당 시설 건축주 겸 수련원장 비롯해 공무원, 화성군수까지 구속 영장이 신청되었고], 사건 당일 술을 마셨던 인솔 교사들도 모두 구속되었습니다. 부지 소유주 김씨는 불구속 입건되었다.

최고 책임자 당시 화성군수는 이 사건으로 인해 군수직에서 사임하였으나, 무혐의로 풀려난 뒤 지금도 지역유지로 잘 산다고 합니다.(2005년 인터뷰). 씨랜드 원장 박씨는 1심에서 징역 26개월 및 금고 5, 전 소망유치원장 천씨는 금고 5년이 각각 선고됐다고 합니다. 이후 이들은 각각 징역 1년과 금고 4년으로 감형됐다가 2001년에 출소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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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본 영화 암수살인이 실화바탕이라고 합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핫한.. 꼬꼬무 시즌3 무섭지만, 흥미로운 이야기 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시즌3 에서 암수범죄 살인마 이두홍이 10건 가까운 사건에 대해 자백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내용을 전했습니다.

이두홍 꼬꼬무 시즌3 암수 범죄 살인 유령살인마


감옥에서 온 살인리스트 유령 살인마 이두홍’과 김정수 형사과의 8년에 걸친 살인 자백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두홍 꼬꼬무 시즌3 암수 범죄 살인 유령살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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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9월 아프리카 소말리아 박하사에게 어머니의 백골 시신에 대한 소식을 접합니다. 무려 7년 만에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김형사는 제보자 이두홍을 용의자로 보고 그의 이력을 파악하게 됩니다. 전과 37범의 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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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홍은 김형사에게 “누군가 부탁을 받고 전달하게 됐는데 까만 봉지에 있었다. 봉지를 땅에 묻는 대신 노름빚을 탕감해 준다고 했다”라고 합니다. 김형사는 토막시신이라고 직감합니다. 김형사는 이두홍에게 “네가 죽였지”라고 물었고 이두홍은 부인을 하면서 “제보하면 돈 삼백 주시려나”라고 하며 거래를 하려고 합니다.



김형사는 이두홍이 제보한 것을 조사해보니 7년 만에 백골로 돌아온 박경호 하사의 어머니 신순임이었고, 동거남 유력 용의자 이두홍이 지목됐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빠져나갑니다. 김정수 형사는 이두홍의 전화를 받고 은밀한 장소에서 만나게 됐는데 부산서부경찰서 소속 형사들이 이두홍을 체포하게 됩니다.

이두홍 꼬꼬무 시즌3 암수 범죄 살인 유령살인마


이두홍은 김형사와 신순임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91일에서 이틀 후인 93일에 여종업을 살해해서 암매장을 했던 것입니다. 이두홍은 유흥주점 여종업원을 암매장한 곳에서 현장검증을 했습니다.

한 달 후에 구치소에서 전화를 했고 김형사는 이두홍에게 “할 말이 있으면 편지로 보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이두홍과 김형사의 두뇌 게임은 무려 8년간이 이어졌고 김정수 형사가 직접 이두홍과 실제 교도소에서 접견하는 영상에서 나오는 대화 내용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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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홍이 김형사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 동안 그가 저지른 범죄들, 실인리스트가 적혀있었는데 범행 연도와 방식, 피해자 이름 등 구체적인 정보들이 상당 수였는데 그는 김 형사에게 8년 동안 편지보냈습니다.

고백한 사건들은 지금까지 수사 대상이 된 적도 없던 암수범죄였는데 이 사건이 영화 암수살인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는데 암수범죄는 사건 자체가 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잡힌 통계는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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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홍은 김형사가 접견을 하러오자 "감옥이 힘들다"고 하며 범죄자임에도 갑질(?)을 합니다. 이두홍은 김형사에게 “징역수발을 해달라”고 했고 김형사는 이두홍에게 “네 하는 거에 달렸다”라고 하며 줄다리기를 합니다.

이두홍은 5년 만에 신순임을 살해했다는 것을 자백했지만 나머지 사건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자 김형사는 마약수사반에서 강력계로 부서를 옮기고 본격적으로 이두홍 사건을 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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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홍의 살인리스트에는 택시기사일을 하면서 희생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A택시 당시 30대 여성, 신순임 살해, 노름방 정사장 살해, 서구 충무로 성인용품 여자 살해, B택시 20대 후반 여성, C택시 할 때 대구 노름방에서 박민철 살해, 중부서 흉기 사영을 하여 살해, 우암도 미스터 주점 송인숙 친구, D택시 손님 살해, E택시 40대 초반 여성 살해, 아모레 주점 여종업원 살해등 11건이었습니다.

조주연 형사는 "김정수 형사가 오자 경찰서에 오자마자 그 날 밤에 사건 얘기를 했는데 저도 뭔가 불이 지펴지는 것 같았다:라고 증언했고 이후 둘은 이두홍 사건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8년 동안 교도소에 출근 도장을 찍으며 이두홍의 자백을 받았는데 이두홍이 그린 약도를 받게 됩니다. 김형사는 이두홍이 준 약도와 그의 말을 듣고 시신을 찾아다녔고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을 쫓는 기분이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김형사와 조형사는 몇날 며칠을 헤매고 다니던 어느 날, 이두홍이 말한 해태상을 발견했는데 공사 중인 현장이었고 중장비를 동원하며 파보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두홍은 김형사에게 “신순임 사건 나는 100% 결정을 못했다”라고 하면서 살인을 번복했고 자백했던 모든 것을 다 뒤집었고 그것은 공소시효를 넘기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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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사는 이두홍이 신순임 집 근처에서 중국집 음식을 배달시킨 기록을 찾았고 노름방 진사장을 찾고 혐의가 없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결국 피해자 신순임 씨가 희생된지 13년 만에 이두홍은 재판에서 살해 혐의가 인정되고 무기징역을 받습니다.

20187월 이두홍은 감옥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사건이 종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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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 개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대량살인마당시 직업은 경찰관, 계급은 순경이었습니다.

1982년에 저지른 살인사건을 '우순경 사건'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국내 최다 살인 기록인 62명을 연달아 살해한, 연쇄살인과는 다른 연속살인범입니다. 당시에는 해당 사건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범곤 우순경 총기난사 사건 꼬꼬무 시즌3
우범곤 우순경 총기난사 사건 꼬꼬무 시즌3


- 우범곤 생애

경남 부산의 한 경찰관의 네 아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별다른 말썽 없이 평범하게 보냈으며, 경찰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장차 경찰관이 되어 아버지처럼 권총을 차고 일하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학교 진학 후부터 학업에 흥미를 잃어 무단결석이 2년 동안 30일 되었으며 고교 시절에는 졸업 당시 65명 중 63등으로 열등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고교 재학 시절에는 분을 이기지 못해 유리창을 깨고 파편으로 배를 긋는 자해를 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특히 고교 3학년때 아버지가 진급을 앞두고 대장암으로 돌아가시며 가세가 기울졌고, 우범곤은 성격 자체가 비뚤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해병대 군복무를 했고, 특등사수로 뽑일 정도로 사격 솜씨가 뛰어났다고 합니다.

 

우범곤 우순경 총기난사 사건 꼬꼬무 시즌3



제대 후 경찰관이 되었으며 초임지는 부산의 한 파출소 였다고 합니다. 이후 서울 101경비단에 선발되어 청와대 경호에 근무했으나 중도에 전출당해 경남 의령군으로 좌천되었다고 합니다. 부산에서 근무할 당시부터 포악한 성격을 드러냈다고 하며, 당시 동료 순경에 따르면 평소 유순하다가도 술만 마시면 성격이 난폭해졌도가 합니다. 청와대 경호에서 제외된 것도 성격이 너무 거칠어 근무 부적격자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었으며, 전출된 후에도 술만 마시면 행패가 심해 미친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 사건 발단

19811230일 오후 5, 의령으로 전근 온 뒤 이듬해 28일에 하숙을 하던 우범곤은 이웃집에 살던 전()양과 사귀게 되었고 39일에 전양의 집에서 동거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동거에 들어가기 전에 전양의 부모는 결혼한 뒤 함께 살라며 만류했지만 우범곤이 결혼 비용이 없다며 가을로 식을 미루기로 하고 당장 혼인신고부터 하겠다고 고집했다고 합니다. 가뜩이나 집안이 가난해 늘 열등 의식에 젖어있던 우범곤은 식도 올리기 전에 여자 집에 얹혀살게 되면서 자신의 무능함에 심각한 콤플렉스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1982426, 우범곤은 저녁시간 근무를 위해 낮 12시경에 집으로 들어와 점심을 먹고는 낮잠을 잤다고 합니다. 잠든 와중에 동거녀가 그의 몸에 붙은 파리를 잡기 위해 손바닥으로 그의 가슴을 쳤고, 이를 계기로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화를 미처 식히지 못한 채 우범곤은 오후 4시경 지서로 간 뒤, 저녁 7시 반경에 술에 취한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만취한 상태에서 코피가 날 정도로 동거녀를 주먹으로 폭행했고, 같은 집에서 살고 있던 동거녀의 친척 언니가 뛰어 들어와 말리자 친척 언니의 뺨마저 닥치는 대로 때렸다고 합니다. 동네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사건의 전말을 들은 그들이 동거녀를 두둔하자, 우범곤은 다시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우범곤 우순경 총기난사 사건 꼬꼬무 시즌3
우범곤 우순경 총기난사 사건 꼬꼬무 시즌3


인근의 육군 방위병들과 소주를 퍼마시던 우범곤은 동거녀의 남동생이 와서 경찰이면 다냐고 소리를 질러대자 폭발, 카빈총을 장전했고 만류하는 방위병들을 총을 쏴 내쫓은 다음, 예비군 무기고에 보관되어 있던 M1카빈, 2자루, 실탄 180, 수류탄 7개 등을 탈취합니다.

 

우범곤 우순경 총기난사 사건 꼬꼬무 시즌3

 

940- 우범곤은 마침 앞을 지나던, 대구에서 표구사를 하는 26남자에게 총을 쏜 것을 시작으로 궁류면 토곡리 재래시장으로 달려가 조준 사격하여 장을 보러온 마을주민 3명을 살해합니다.

 

945- 마을의 통신을 차단하기 위해 궁류우체국으로 가서 여성 교환원 2명과 숙직 중이던 집배원 1명을 살해합니다. 그러나 교환원이 숨지기 직전, 마을 이장 집의 행정전화와 의령우체국 간의 코드를 연결했던 덕분에 주민에 의해 신고(2234)가능했다고 합니다.

 

10- 그는 곧 압곡리 매실부락으로 가서 10여 분간 총기를 마구 난사하였고, 주민 4명 인근 마을의 2인을 살해합니다.(전양은 생존했지만 전양의 가족을 살해.)

 

1010- 그는 운계리 시장으로 달려가 주민 7명을 살해합니다.

 

1050- 그는 상갓집에 난입하여 “비상이 걸렸다”고 말하고는 문상을 한다는 핑계로 부의금 3천 원을 내고 문상객들과 어울려 10여 분간 함께 술을 마신 뒤 갑자기 총을 난사하여 상주 일가족 등 12명을 살해합니다. 이후 그는 불이 켜진 집을 찾아다니며 총을 난사하여, 이곳에서만 무려 23명을 살해합니다.

 

다음 날인 27일 새벽 535- 그는 평촌리 마을에 다시 나타나 알고 지내던 주민의 민가에 침입합니다. 그는 일가족 5명을 깨운 뒤 갖고 있던 수류탄 2발을 한꺼번에 터뜨렸고, 그 자리에서 우범곤 본인을 포함해 4명이 폭사했다고 합니다.

 

- 경찰의 대응

근무지를 무단이탈해 온천접대 후 술을 마시고 돌아오던 궁류지서장 허창순 경사 일행은 밤 2250분경 길에서 만난 주민에게 신고를 받지만 무시하고 궁류지서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우범곤이 무기를 탈취해 총격을 벌이고 있다는 보고를 듣자 총격 현장에 자기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하며 도피했다고 합니다.

마을에
살던 의령군 민방위과 공무원의 사건 전파를 받고 의령경찰서 경무과장 신현기와 보안과장 김영석 휘하 전투경찰 30명이 자정 무렵 도착했으나 우범곤의 소재를 파악하기는커녕 피격을 두려워하여 마을 초입 다리 밑 등 곳곳에 숨어있었다고 합니다. 후에 경찰은 이를 매복이었다고 변명했으나 여론에 기름을 붓는 결과가 되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주민 살상이 진행 중인데 경찰은 현장에 진입하지 않고 웅크려 있었다는 것이며 더구나 매복을 다리 밑에서 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관할 책임자인 의령경찰서장 최재윤 경정 (1982년 당시 57)은 다음날 부산에서 서장회의가 있다는 핑계로 하루 일찍 부산으로 이동하여 근무지를 보고 없이 무단이탈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보고를 받고 복귀하여 범행 지역에 이르는 다리에 도착한 것은 익일 새벽 120분경이었다고 합니다. 현장에 도착한 의령서장은 경찰들을 규합하여 범인 수색에 나서기는커녕, 곳곳의 사상자를 목격하고 두려움에 빠져 곧바로 궁류지서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지서에 도착한 의령서장은 우범곤이 많은 실탄을 가져갔다는 보고를 받자 더욱 두려움에 빠져 지서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지서에서 마을 스피커로 경보를 발령하고 사이렌을 울리거나, 또는 예비군을 동원하거나 의령서 휘하 인근 지서에 경찰 지원을 지시하지도 않고 단지 내무부에 상황 보고만 하였을 뿐 아무 움직임도 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지서에 대기하고 있던 경무과장과 보안과장도 마찬가지로서, 만약 이들이 밤 2224분에 처음 신고를 접수한 즉시 경보 방송을 발령하였다면 적어도 희생자의 절반을 구했을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새벽 2시에는 주민 2명이 목숨을 걸고 산을 넘어와 출동을 재촉하였으나 서장은 날이 어둡다며 이것도 거부했다고 합니다. 새벽 4시가 다 되어서야 마산시, 진주시의 기동대가 궁류에 도착하였으나 결국 사건은 우범곤의 자폭으로 종료되었으니 요약하면 경찰력의 개입이나 저지없이 주민 살상이 진행되었고 속수무책으로 종료되었습니다.

 

우범곤 우순경 총기난사 사건 꼬꼬무 시즌3


게다가 우범곤이 2623시경부터 다음날 자폭하는 새벽 5시경 사이에 무려 6시간 가량 딱히 범행을 실행하지 않고 어딘가에서 조용히 있었는데, 만약 그가 쉬지 않고 계속 날뛰었다면 이 때 경찰은 아무 역할도 하지 않고 틀어박혀 있었으니 피해가 몇 배로 훨씬 커졌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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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의 이태원 살인사건은 20년도 넘는 전에 발생한 사건입니다. 2009년에 장근석씨 주연의 영화로도 개봉한 적도 있습니다. 최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시즌2에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저도 한참 잊혀져있던 사건이었는데, 종적으로 패터슨이 진범으로 잡혀 마무리가 되었더군요. 안타까웠던 것은 20년동안 유가족들은 얼마나 길기도 긴싸움을 하셨던것일지.. 감히 상상도 가지 않았습니다.

 

 

 

- 사건 전말

199743일 밤 10시 홍익대 공대생 조중필 씨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여자친구와 같이 근처 버거킹 갔다고 합니다. 여자친구가 주문하는 사이에 화장실에 들어갔고, 곧이어 2명의 한국계 미국인들이  화장실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잠시 조씨는 화장실 바닥에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채 발견되었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구급대원들이 도착했지만, 이미 흉기로 다수 찔린 조씨는 왼쪽 목동맥이 절단되어 과다출혈로 사망했습니다.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 사건 전개

44, 미군 부대로 패터슨이 남자를 찌르는 것을 봤다는 제보 전화걸려왔습니다. 패터슨은 긴급 체포되어 순조롭게 해결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패터슨은 본인이 아닌 친구 에디(에드워드 리)범행을 했다고 합니다. 사건 당일 이태원 클럽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신 뒤 배가 고파 햄버거 가게에 갔다고 합니다. 그때 한국인 남자가 화장실로 들어갔고 에디가 "멋진 걸 보여줄 테니 화장실로 들어가자"라고 해서 들어갔더니 순식간에 에디가 남자를 살해했다고 주장합니다.

 

 

 

-에드워드 리(이하 에디)가 범인

에디를 체포하기 위해 에디의 집으로 수사관들이 출동합니다. 에디는 변호사를 만나고 있었고 자진출두 후 조사를 받습니다. 디의 진술은 패터슨의 진술과 정반대였습니다. 그는 패터슨이 보여줄 게 있다며 화장실에 가자고 했고, 손을 씻으러 가려던 본인은 그를 따라나서 손을 씻고 있는데, 패터슨이 중필씨를 계속 찔렀다고 주장합니다. 에디는 그 장면이 믿어지지 않아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고 진술합니다.

 

-친구들의 진술은?

두 사람의 엇갈린 진술에 미군 범죄 수사대는 그날 밤 함께 있던 친구들을 불러 조사하게 됩니다 친구들은 패터슨이 주머니에서 범행에 사용된 잭나이프를 꺼냈고, 이때 에디가 패터슨에게 "패터슨 사람 찔러본 적 있어? 나가서 아무나 찔러봐"라고 부추겼다고 진술합니다. 순간 중필씨가 화장실로 들어갔고 이에 두 사람이 뒤를 따랐다고 주장합니다.

 

이후 화장실에서 나와 클럽으로 돌아온 에디의 흰 셔츠에는 핏자국이 스프레이로 뿌린 듯한 모양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어떤 사람 목을 칼로 찔렀다"고 했고, 친구들이 놀라 화장실로 갔더니 중필씨가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친구들이 "네가 사람을 죽였지?"라고 따져 물었더니 에디는 "내가 아니야. 그저 재미로 패터슨이 그런 일을 했다"라며 웃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반면 패터슨은 화장실에서 나와 클럽으로 돌아오지 않고 곧장 클럽의 화장실로 갔다고 합니다. 머리부터 셔츠, 바지, 양손이 피투성이였던 패터슨은 화장실에서 피를 급히 지웠고 친구의 옷으로 갈아입고 모자까지 빌려 쓴 후 서둘러 클럽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는 미군부대로 돌아가서 피 묻은 셔츠를 태웠고 범행에 사용한 칼은 하수구에 버리는 증거 인멸의 행동을 했습니다.

패터슨은 '노르테 14'라는 갱단의 멤버였고, 이 갱단의 공격 방식이 짧은 시간에 집중 공격을 퍼붓는 중필씨를 살해한 것과 비슷하다고 진술합니다. 미군 수사관은 범인이 패터슨이라 확신하고 이 같은 소견을 한국 검찰에 넘깁니다.

 

- 한국의 검찰은?

살인사건만 100건 넘게 맡았던 베테랑 박검사는 처음부터 사건을 다시 조사했고, 범인이 에디라고 확신합니다. 박검사는 부검을 맡았던 법의학자의 "범인은 피해자보다 키가 크고 피해자를 제압할 정도로 힘이 센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에 주목합니다. 박검사는 신장 172cm, 체중 63kg의 마른 체격이었던 패터슨이 아닌 신장 180cm, 체중 105kg의 꽤 체격이 큰 에디가 범인일 것이라 판단합니다. 검사는 에디는 살인죄, 패터슨은 흉기 소지 및 증거 인멸 혐의로 기소했고, 에디는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패터슨은 증거 인멸죄로 16개월을 선고 받습니다.

 

-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는 증거불충분으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하였고, 결국 서울고법에서는 새로운 증거를 찾지 못하여 에드워드 리에 대해 무죄를 선고합니다. 살인범일 수도 있지만 증거가 부족하여 유죄를 확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재상고심에서도 대법원은 그에게 무죄 판결을 내립니다. 패터슨은 단순흉기 소지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반년 만인 1998815815 특별사면으로 풀려나게 됩니다.

 

 

- 12년이 흘러 패터슨은?

12년이 흘러서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나왔고 2009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미국으로 가서 패터슨 찾았습니다. '그알' 제작진은 1주일 만에 패터슨의 어머니를 만났고 패터슨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는 한국에서 자신을 도망자 취급을 하는 것을 억울해 합니다.

방송의 파장으로 이태원 살인사건의 재수사가 시작됩니다. 3년 만에 패터슨의 한국 송환이 결정됐고, 당당한 얼굴로 송환된 패터슨은 여전히 살인 혐의 인정하지 않았고 "내가 여기 있는 것은 옳지 않다"라며 자신이 송환된 것에 불편한 모습을 보입니다.

 

 

 

20111010, 패터슨이 공소 시효를 약 6개월 남겨두고 미국에서 잡힙니다. 당시에는 공소시효가 6개월여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언론보도를 통해 패터슨이 범행을 시인했다.라는 사실이 드러나 파문도 있었습니다. 당초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에디와

또 다른 친구와 함께 LA에서 만났었는데, 이 자리에서 패터슨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자신이 그를 찔러 죽였다.라고 자랑했다고 합니다. 한국 정부를 조롱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사실은 그 자리에 동석했던 다른 친구가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알려집니다.

 

에드워드 리는 유족에게 편지를 전해 달라고 했는데 사건에 대해서 유족에게 죄송하다라고 하면서 패터슨이 범인이라는 증거를 미국 검찰에 제출하겠다.라고 언급했다고 합니다. 미국 검찰은 속지주의 원칙에 의거하여 패터슨이 범인이 맞다면 한국에서 처벌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최종적으로 과학수사 기법으로 혈흔을 분석한 결과 비산흔이 더 많이 묻은 패터슨이 살인자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패터슨은 20년 형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최종적으로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에서 잊혀졌던 충격적인 사건이었는데, 지금에서야 그 결말을 알게 되었습니다. 

20년이 지났지만, 범인이 잡혔습니다. 피해자와 20년동안 유가족들은 상상하지 못할 고통,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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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그것이 알고 싶다. 꼬꼬무에서도 다시 다뤄진 피라미드 사기 사건의 주인공 입니다. 조희팔 씨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피라미드 사기 사건의 용의자입니다.

 

 

피해규모

경찰 추산으로 5조 원의 피해액에 7만 명의 피해자, 자살한 피해자만도 30여 명이른다고 합니다. 피해자 단체 <바른가정경제실천을 위한 시민연대>조희팔의 사기 행각으로 발생한 피해액이 8, 조희팔은 피해 금액 중 적어도 2조 원 이상 챙겼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피해자 단체 바실련은 피해구제를 위해 범죄수익금환수를 위한 일부 개정안(가칭 바실련법) 추진을 위해 투쟁중이라고 합니다. 200811월 수배되었으나 200812월 태안군에서 중국으로 밀항합니다. 밀항 이후 중국에서 조영복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1 1219일 유가족들이 중국에서 장례식을 치르는 모습의 동영상과 사망진단서를 공개해 사망했다고 알려왔으나 지금까지 논란이 많습니다.

 

 

 

 

 

의혹들

조희팔은 200810월 대구지방경찰청 수사과장 권혁우 총경에게 수표를 건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는 검거될 경우 조희팔 사건을 수사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전보 조치되었습니다.

조희팔의 밀항에 해경 경찰관과 유착 관계가 있었다는 의혹있습니다.  해경은 이에 대해 감찰을 진행했습니다. 20091월 태안해양경찰서장은 그의 밀항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직위해제되었지만, 4개월후, 복귀해 201510월 현재 강원지역 해경서장으로 근무중으로 보도되었다고 합니다.

조희팔을 중국에서 만난 대구지방경찰청 소속 정 모 경사가 검거하기는커녕 골프와 술 접대를 받은 혐의로 20129월 구속영장이 청구됐습니다.

20121115- 조희팔로 부터 27천만원 뇌물을 받은 서울고검 김광준 검사(부장검사급)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었습니다

201517- 조희팔 측근으로부터 10억 뇌물을 받은 대구지검 서부지청 총무과장(검찰 서기관) 오모(54)씨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등 혐으로 구속기소 되었습니다.

 

 

사망의혹

20125조희팔이 중국에서 20111219일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조희팔은 중국에 밀항했을 당시부터 조선족 조영복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조희팔의 장례는 유족이 동영상을 촬영했습니다. 경찰은 화장된 유골 DNA를 확인하여 사망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밝혔. 그러나 감식 불가라는 결론을 받았다고 합니다.

2012912조희팔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나옴에 따라 검찰이 중국 공안에 생사확인요청을 했습니다. 201346TV조선 박근형의 추적자 9회 방송에서 국내서 조희팔을 목격했다는 제보자의 인터뷰가 보도되었습니다. 2016628일 대한민국 검찰은 조희팔이 2011년에 죽은 것으로 보인다며 공소권없음 처분했습니다.

 

 

 

마치.. 도시 괴담(?)과 같은.. 이야기 인지라.. 의혹은 무성하지만, 결과적으로 공소권없음으로 처분되어.. 사건이 마무리 되는것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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