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건 개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대량살인마로 당시 직업은 경찰관, 계급은 순경이었습니다.
1982년에 저지른 살인사건을 '우순경 사건'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국내 최다 살인 기록인 62명을 연달아 살해한, 연쇄살인과는 다른 연속살인범입니다. 당시에는 해당 사건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 우범곤 생애
경남 부산의 한 경찰관의 네 아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별다른 말썽 없이 평범하게 보냈으며, 경찰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장차 경찰관이 되어 아버지처럼 권총을 차고 일하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학교 진학 후부터 학업에 흥미를 잃어 무단결석이 2년 동안 30일 되었으며 고교 시절에는 졸업 당시 65명 중 63등으로 열등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고교 재학 시절에는 분을 이기지 못해 유리창을 깨고 파편으로 배를 긋는 자해를 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특히 고교 3학년때 아버지가 진급을 앞두고 대장암으로 돌아가시며 가세가 기울졌고, 우범곤은 성격 자체가 비뚤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해병대 군복무를 했고, 특등사수로 뽑일 정도로 사격 솜씨가 뛰어났다고 합니다.
제대 후 경찰관이 되었으며 초임지는 부산의 한 파출소 였다고 합니다. 이후 서울 101경비단에 선발되어 청와대 경호에 근무했으나 중도에 전출당해 경남 의령군으로 좌천되었다고 합니다. 부산에서 근무할 당시부터 포악한 성격을 드러냈다고 하며, 당시 동료 순경에 따르면 평소 유순하다가도 술만 마시면 성격이 난폭해졌도가 합니다. 청와대 경호에서 제외된 것도 성격이 너무 거칠어 근무 부적격자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었으며, 전출된 후에도 술만 마시면 행패가 심해 미친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 사건 발단
1981년 12월 30일 오후 5시, 의령으로 전근 온 뒤 이듬해 2월 8일에 하숙을 하던 우범곤은 이웃집에 살던 전(田)양과 사귀게 되었고 3월 9일에 전양의 집에서 동거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동거에 들어가기 전에 전양의 부모는 결혼한 뒤 함께 살라며 만류했지만 우범곤이 결혼 비용이 없다며 가을로 식을 미루기로 하고 당장 혼인신고부터 하겠다고 고집했다고 합니다. 가뜩이나 집안이 가난해 늘 열등 의식에 젖어있던 우범곤은 식도 올리기 전에 여자 집에 얹혀살게 되면서 자신의 무능함에 심각한 콤플렉스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1982년 4월 26일, 우범곤은 저녁시간 근무를 위해 낮 12시경에 집으로 들어와 점심을 먹고는 낮잠을 잤다고 합니다. 잠든 와중에 동거녀가 그의 몸에 붙은 파리를 잡기 위해 손바닥으로 그의 가슴을 쳤고, 이를 계기로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화를 미처 식히지 못한 채 우범곤은 오후 4시경 지서로 간 뒤, 저녁 7시 반경에 술에 취한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만취한 상태에서 코피가 날 정도로 동거녀를 주먹으로 폭행했고, 같은 집에서 살고 있던 동거녀의 친척 언니가 뛰어 들어와 말리자 친척 언니의 뺨마저 닥치는 대로 때렸다고 합니다. 동네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사건의 전말을 들은 그들이 동거녀를 두둔하자, 우범곤은 다시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인근의 육군 방위병들과 소주를 퍼마시던 우범곤은 동거녀의 남동생이 와서 경찰이면 다냐고 소리를 질러대자 폭발, 카빈총을 장전했고 만류하는 방위병들을 총을 쏴 내쫓은 다음, 예비군 무기고에 보관되어 있던 M1카빈, 2자루, 실탄 180발, 수류탄 7개 등을 탈취합니다.
밤 9시 40분 - 우범곤은 마침 앞을 지나던, 대구에서 표구사를 하는 26세 남자에게 총을 쏜 것을 시작으로 궁류면 토곡리 재래시장으로 달려가 조준 사격하여 장을 보러온 마을주민 3명을 살해합니다.
밤 9시 45분 - 마을의 통신을 차단하기 위해 궁류우체국으로 가서 여성 교환원 2명과 숙직 중이던 집배원 1명을 살해합니다. 그러나 교환원이 숨지기 직전, 마을 이장 집의 행정전화와 의령우체국 간의 코드를 연결했던 덕분에 주민에 의해 신고(22시 34분)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밤 10시 - 그는 곧 압곡리 매실부락으로 가서 10여 분간 총기를 마구 난사하였고, 주민 4명 인근 마을의 2인을 살해합니다.(전양은 생존했지만 전양의 가족을 살해.)
밤 10시 10분 - 그는 운계리 시장으로 달려가 주민 7명을 살해합니다.
밤 10시 50분 - 그는 상갓집에 난입하여 “비상이 걸렸다”고 말하고는 문상을 한다는 핑계로 부의금 3천 원을 내고 문상객들과 어울려 10여 분간 함께 술을 마신 뒤 갑자기 총을 난사하여 상주 일가족 등 12명을 살해합니다. 이후 그는 불이 켜진 집을 찾아다니며 총을 난사하여, 이곳에서만 무려 23명을 살해합니다.
다음 날인 27일 새벽 5시 35분 - 그는 평촌리 마을에 다시 나타나 알고 지내던 주민의 민가에 침입합니다. 그는 일가족 5명을 깨운 뒤 갖고 있던 수류탄 2발을 한꺼번에 터뜨렸고, 그 자리에서 우범곤 본인을 포함해 4명이 폭사했다고 합니다.
- 경찰의 대응
근무지를 무단이탈해 온천접대 후 술을 마시고 돌아오던 궁류지서장 허창순 경사 일행은 밤 22시 50분경 길에서 만난 주민에게 신고를 받지만 무시하고 궁류지서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우범곤이 무기를 탈취해 총격을 벌이고 있다는 보고를 듣자 총격 현장에 자기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하며 도피했다고 합니다.
마을에 살던 의령군 민방위과 공무원의 사건 전파를 받고 의령경찰서 경무과장 신현기와 보안과장 김영석 휘하 전투경찰 30명이 자정 무렵 도착했으나 우범곤의 소재를 파악하기는커녕 피격을 두려워하여 마을 초입 다리 밑 등 곳곳에 숨어있었다고 합니다. 후에 경찰은 이를 매복이었다고 변명했으나 여론에 기름을 붓는 결과가 되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은 주민 살상이 진행 중인데 경찰은 현장에 진입하지 않고 웅크려 있었다는 것이며 더구나 매복을 다리 밑에서 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관할 책임자인 의령경찰서장 최재윤 경정 (1982년 당시 57세)은 다음날 부산에서 서장회의가 있다는 핑계로 하루 일찍 부산으로 이동하여 근무지를 보고 없이 무단이탈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보고를 받고 복귀하여 범행 지역에 이르는 다리에 도착한 것은 익일 새벽 1시 20분경이었다고 합니다. 현장에 도착한 의령서장은 경찰들을 규합하여 범인 수색에 나서기는커녕, 곳곳의 사상자를 목격하고 두려움에 빠져 곧바로 궁류지서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지서에 도착한 의령서장은 우범곤이 많은 실탄을 가져갔다는 보고를 받자 더욱 두려움에 빠져 지서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지서에서 마을 스피커로 경보를 발령하고 사이렌을 울리거나, 또는 예비군을 동원하거나 의령서 휘하 인근 지서에 경찰 지원을 지시하지도 않고 단지 내무부에 상황 보고만 하였을 뿐 아무 움직임도 취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지서에 대기하고 있던 경무과장과 보안과장도 마찬가지로서, 만약 이들이 밤 22시 24분에 처음 신고를 접수한 즉시 경보 방송을 발령하였다면 적어도 희생자의 절반을 구했을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새벽 2시에는 주민 2명이 목숨을 걸고 산을 넘어와 출동을 재촉하였으나 서장은 날이 어둡다며 이것도 거부했다고 합니다. 새벽 4시가 다 되어서야 마산시, 진주시의 기동대가 궁류에 도착하였으나 결국 사건은 우범곤의 자폭으로 종료되었으니 요약하면 경찰력의 개입이나 저지없이 주민 살상이 진행되었고 속수무책으로 종료되었습니다.
게다가 우범곤이 26일 23시경부터 다음날 자폭하는 새벽 5시경 사이에 무려 6시간 가량 딱히 범행을 실행하지 않고 어딘가에서 조용히 있었는데, 만약 그가 쉬지 않고 계속 날뛰었다면 이 때 경찰은 아무 역할도 하지 않고 틀어박혀 있었으니 피해가 몇 배로 훨씬 커졌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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